며칠 전이 설날이었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Chinese New Year을 사용하는 외국인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Lunar New Year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올라왔다. 감정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CNY가 조금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글에서는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살짝 풀어보려고 한다.
청정하기를 원하는 내 블로그에서 이러한 언급을 하는 것이 그리 내키지는 않지만, 약간의 면책 조항을 달아두려고 한다. 시진핑 개새끼. 타이완 넘버원. 정치적인 오해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LNY에 동의하는 진영의 주장
Lunar New Year에 동의하는 진영은 아래의 근거로 이에 동의한다.
- 중국에서만 쓰는 음력 새해가 아닌데, 왜 Chinese New Year인가?
- 음력을 중국에서 만들었다고 Chinese New Year이라 부를거라면, 양력 새해도 Gregorian New Year이라 불러라.
- 어떻게 정확한 표현만을 쓸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학문적 용어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용어의 합의가 필요할 뿐이다.
다른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내 블로그는 언제나 그저 내 생각을 담담히 이야기 할 뿐 독자를 설득하고자 하는 목적이 없으므로 직접 구글 서칭을 해 보라는 말로 넘어가겠다.
음력과 시헌력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설날=음력 새해를 챙기는 국가에서의 음력은 기본적으로 청나라에서 만든 태음태양력인 시헌력을 표준으로 삼는다. 태음태양력은 양력과 음력 사이의 차이를 적절한 기준에 따라 보완한 역법으로, 진짜배기 음력과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슬람력을 진짜배기 음력이라고 본다. 물론 시아파와 수니파간의 셈이 달라 이슬람력도 두 종파를 기준으로 나눠지지만,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태음력이 아닌 태음태양력인 이상, Lunar New Year이라는 번역은 잘못된 번역임이 확실하다. Lunisolar New Year으로 번역하는 것이 그나마 유효할 것이다. 물론 동의-3 근거의 말대로 Lunar와 Lunisolar를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냐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또 시헌력이 청나라에서 만들어진 만큼, Chinese New Year이라는 번역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냐와는 무관하게 충분히 설득력있는 번역이라는 점을 반박하기 힘들다. 어쨌거나 중국=청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동의-2 근거가 반박한다 볼 수 있지만, 동의-3을 인정해주면 동의-2는 이와 모순되는 근거로 보고 무시해도 되는 근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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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시헌력
중국인의 입장에서 Lunar New Year이라는 번역은 충분히 발작 버튼이 될 법 하다. 이걸 김치에 비유해보면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꽤나 공감되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엔 김치가 있다. 이 김치가 일본, 중국, 미국 등 전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되었고, 그렇게 십수년이 지났다. 각국은 수입한 김치를 현지화하여 한국의 김치 문화와는 차이가 있는 김치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각국에서 김치를 김치로 부르면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다. "김치를 한국에서만 먹는 것도 아닌데, 왜 그들이 부르는 김치라는 한국어 표현을 써야하나? 심지어 이젠 그들의 김치와 우리 김치가 서로 다르기까지 하니, 이제부터 김치라는 표현 대신 국가 중립적인 '양념 배추 절임'이라 부르자!" 같은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어서 복장이 터지는 상황 아닌가? 우리가 나서서 양념 배추 절임이라 부르자고 해도 김치라는 표현을 고수해야 할 판에,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저들이 김치를 국가 중립적인 무언가로 만들고자 하는 상황이다.
Chinese New Year도 마찬가지 아닌가? 중국의 시헌력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태양력 새해를 기리는 것임이 명백한데, 심지어 이해당사자들과 무관한 서방에서 CNY를 LNY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역-동북공정과 같은 상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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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동북공정, 서북공정에서 시작되는 중국의 문화 침탈에 당한 것이 많은 우리로써는 CNY의 주장이 우리의 설날마저 침탈하려는 행위로 비쳐지기도 하고, 또 위에서 이야기한 역-동북공정의 경우도 즐거우면 즐거웠지, 불쌍하게 봐 줄 이유가 없다. 다만 그러한 우리 전유의 감정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생각했을 때, Chinese New Year이라 부르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보편적인 감성에서도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Cheong's New Year다. 덜 보편적이지만 Chinese New Year보다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고, 그러면서도 중국이 청나라 채권을 승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중국과 조금이나마 간격이 생기며, 무엇보다 CNY와 약자가 똑같지 않은가.
나는 CNY에 동의한다. 물론 그게 Chinese New Year인지 Cheong's New Year인지는 나만 안다. 😋